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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주정수에게는 아직 그런 건 별로 문제되지 않았다. 그의 덧글 0 | 조회 26 | 2021-05-31 22:35:31
최동민  
하지만 주정수에게는 아직 그런 건 별로 문제되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 설계된 낙토의 건설 사업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탈없이 수행되어야 했고 작업 능률을 좀더 높혀야 했다. 그는 간호주임과 간호수들의 행패를 모른 척 눈감아버리고 있었다. 원생들의 불평같은건 아주 시치미를 떼고 모른 척했다. 노루사냥 사건에 대해서도 이순시 쪽 과실은 전혀 추궁을 하지 않았다. 하극상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 노루 사냥 사건에서 그가 취한 태도는 다만 그뿐이었다. 3개월에서 6개월 동안 마을 청년들이 도내 감옥소 신세를 지고 나왔을때, 어떻게 된 셈인지 사건의 장본인인 이순시는 이제 지난날의 순시에서 구북리 마을을 대표하는 평의회 위원으로까지 직위가 승진되어 있었던 것이다.“당신들은 저들이 누구인가를 알고 있을 게요. 저들이 당신들을 어떻게 저주해왔으며 당신들을 어떻게 심판해왔는가를, 당신들을 어떻게 이 섬으로 쫓아 들여보낸 사람들이었던가를 말이오. 그리고 이곳에 작은 당신들의 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여러분의 소망과 고만이 어떠했던가를 당신들은 아마도 절대로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을 또한 잊어서도 안 될 일이구요. 그런데 어떻습니까. 지금은 사정이 달라질 수가 있습니까? 이제 땅을 버리더라도 당신들은 그 육지로 가서 어디서든 다시 당신들이 살 땅을 용납받을 수가 있습니까. 어림없는 일입니다. 육지 사람들과의 싸움은 아직도 여전한 상탭니다. 그리고 당신들은 끝끝내 그 싸움에 지고 물러설 수는 없습니다. 싸움의 패배는 그것이 곧 당신들의 마지막 생존원의 상실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이 싸움은 당신들의 생존권을 건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싸움을 중단하고 물러설 수는없습니다.”하지만 주정수 시대에도 명분이나 동기에 잘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주정수에게도 더할 수 없는 동기와 훌륭한 명분이 있었다. 문제는 오히려 그 명분의 지나친 완벽성, 명분이 너무도 훌륭했기 때문에 아무도 그 명분에는 입을 열어 말을 할 수 없었던 명분의 독점성이었다. 게다가 명분이라는 건 언
한민의 이야기는 거기서 비로소 그 유명한 ‘노루 사냥 사건’을 소개하기 시작한다.원장의 부임 연설은 아닌게아니라 별로 달가운 편은 못 되었던 모양이었다. 상욱이 말한 것처럼 섬사람들이 다시 한번 그 원장에게서 옛날 주정수의 그림자를 보았는지 어쨌는지는 단언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적어도 원장 자신의 희망처럼 큰 신뢰와 새로운 용기를 심어줄 수는 없었던 게 분명해진 것 같았다.때는 1930년대 초반의 어느 가을날 저녁.장소는 화물차나 진배없는 야간 남행 열차의 한구석.밤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인 듯 옷깃으로 얼굴을 깊숙이 가린 청년 하나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그 야간 열차의 구석에 자루처럼 초라하게 쭈그려 앉아 있었다.그 청년의 맞은편 구석 희미한 전깃불 아래도 역시 옷깃으로 얼굴을 잔뜩 싸 가린 채 아까부터 자꾸 청년의 동정을 유심히 살피고 있는 여인이 하나 앉아 있다.여인은이윽고 횃불 빛이 관사 창문에 어른대기 시작하면서 원생들의 소란스런 합창가운데서 원장을 찾는 고함소리가 들려왔다.그러니까 그때는 물론 제게도 나름대로의 구실은 마련되고 있었던 셈이지요. 그리고 저는 그것을 글월로 적어서 원장님께 전해올릴 작정까지 세우고 있었답니다. 하지만 전 결국 그 글월을 원장님께 전해올릴 수가 없었지요. 글월 대신 어느 날 저녁 원장님을 찾아가서 못난 소리들만 늘어놓다 자리를 물러서버린 저였습니다. 그리고 섬을 떠나버린 저였습니다.눈썹들이 없었다. 하지만 장교의 말대로 이전에 문둥이였다는 것과 지금도 문둥이라는 것과는 달랐다. 선수 교대가 잦은 것은 발가락이 없거나 발 신경의 어느 일부분이 마비되었거나, 어딘가가 성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보결선수가 다 나간 후였다. 한 선수가 공을 차고 뒹굴더니 일어서질 않았다. 빼들었던 권총을 버린 장교는 주섬주섬 유니폼을 주워입고 이번에는 그 자신이 경기장으로 뛰어들었다. 관중들은 놀랐다. 이미 게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음성 환자들을 두고 어떤 사람이 어느 만큼 더 성자적인 시련을 감당해내느냐를 보고 있는 관중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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